차용미술의 가치평가와 그 근거로서 ‘이유의 담론’

차용 작업, 즉 타인이 제작한 이미지 전부 혹은 일부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는 작업은

다원주의시대 이전에도 진행되었다.

서구 모더니즘 시기 이전에는 대가의 작품을 모방하여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어떤 다른 의미를 전달하려는 목적보다는 교육과정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앵그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름다운 페로니에르」를 모사하여 그와 지각적으로

거의 동일한 작품을 제작했다.

이 경우 무엇보다도 형식의 완벽한 모방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차용은 대부분 선배 화가의 미적 이념과 기술을 모방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서구의 모더니즘 시기에는 작품의 독창성과 개성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차용을 원칙적으로 금기시하였지만

몇 가지 경우에는 허용되기도 했다. 마티스가 샤르댕의 「가오리」를 차용하여 그렸을 때는

전통적인 재현 미술 시기처럼 선배화가의 기술을 익히려는 목적으로 수행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더니즘 시대의 대부분의 차용은 선배 화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수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마네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차용하여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를 그렸다.

마네는 고야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고야와 동일한 구조로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다.

고흐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모방하여 동일 제목의 작품 「씨 뿌리는 사람」을 그렸다.

두 그림의 형태는 유사하나 빛의 처리 방식, 세부 묘사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흐는 밀레의 작품을 모방하여 밀레 작업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의 독창성을

나타내려고 했다.

모더니즘 시기에도 수사적인 목적으로 타인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차용하여 「올랭피아」를 완성했는데 마네는 티치아노의

누드 구도를 차용하여 과거로부터 내려온 누드화의 관습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뒤샹(Marcel Duchamp) 의 「L.H.O.O.Q.」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차용했는데,

이 경우도 이미지에 낙서를 추가함으로써 원작의 분위기를 해체하고 서구 전통 문화를 공격하고 있다.

뒤샹은 전통 문화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다빈치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 시기의 차용 작품의 경우에는 뒤샹의 경우를 예외로 한다면,

차용이미지를 도입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에 차용 작가의 예술적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양식이나 기법 등이

추가되어 있어 예술작품으로서 평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다원주의시대에 오면서 차용이미지와 지각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한 차용 작품이

등장한 경우가 발생했고, 혹은 사진처럼 순전히 기계적인 방법으로 차용하여 차용 작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특히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경우는 차용된 작품이 원래의 이미지와 눈으로 구별이 안 될 때 발생한다.

이 때 지각적인 요소의 분석만으로는 차용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요소로 평가해야 한다. 이때는 단토의 다원주의 비평의 원리에 따라

해당 작가가 왜 남의 이미지를 차용했는지, 더 나아가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하게

차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여 그 이유의 적절성 등을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이 작품의 예술적 질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원주의시대에는 문화권마다 다양한 예술적 목표가 있고, 그 표현 방식도 다양하기 때문에

비평가의 지각적인 판단, 즉 훈련된 눈(Practiced Eyes)을 가지고는 동시대 미술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각적 성질만 가지고는 어떤 목적으로 그러한 표현 방식을 사용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팝아트나 미니멀리즘 작품처럼 일상 사물이나 혹은 기존의 이미지와 눈으로 구분할 수 없는

작품의 경우는 훈련된 눈만 가지고는 그 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각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하여 전문가의 훈련된 눈으로도 그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토는 이것을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와 지각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한 워홀의 「브릴로 상자」의 예술적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워홀의 작품이 제작 된 해당 지역의 예술계(Art World),

즉 예술의 전통과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단토는 주장하고 있다(Danto, 1964: 580).

“나의 논점은 예술 작품을 제시하고 구성할 때, 누가 옳고 그르냐보다는 예술계의 실체인 이유의 담론(the discourse of reasons)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이 속에서 발생한다(Danto, 1992: 52).”

차용미술작가는 다른 동시대 미술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성취하는데 특정 차용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차용미술 대부분은 그 예술적 목표가 다양하여 그 차용이미지만 가지고는

그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표가 적절히 성취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명한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해도, 작품의 제작 의도는 다양하기 때문에

그 이미지만 가지고는 그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차용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의 문제는 해당 지역의 예술계에서 해당 작품의

‘이유의 담론’을 확인하여 해결할 수 있다.

예컨대 워홀이 1960년대 미국의 물질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로

브릴로 상자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런데 타문화에 속해 있는 우리는 그것이 성공했는지 그 자체로는 알 수 없다.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브릴로 상자가 그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알고 있어야만,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그 의도의 적절한 수사적 장치인지 혹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이 적절한 수사적 장치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예술계 속에서

그 작품이 왜 예술로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한 ‘의유의 담론’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정보를 확인하고 그 이미지가 그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게 했는지 추론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동시대 작품의 경우 가치평가의 근거를 제시하는 작업은 다양한 문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비평가의 눈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그 작품이 그 문화에서의 어떤 역할을 맡았고

그것이 적절히 수행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행될 수 있다.

차용미술의 경우, 차용이미지는 다른 수사적 장치와 다르게 이중적으로 작동된다.

한편으로는 일상 오브제처럼 재맥락화 방식으로 작동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 이미지가 지닌 표상방식의 힘에 의해 작동되기도 한다.

참조문헌 : 파워볼놀이터https://plab.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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